디스크립션: 주제 소개
1980년대, 군사 정세가 지금보다 훨씬 긴박했던 시절입니다. 특히 해안 방어부대에 있던 병사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북한의 상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장 속에서 생활했죠. 제 아버지도 그 시절 해안 경계 근무를 하셨는데, “한밤중에 파도 소리에도 깜짝 놀라 총 들고 뛰쳐나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해군, 해병대의 삶은 단순한 군 생활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작전 중인 삶’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해군의 해안 배치 실태
그 당시 해군은 해안선 곳곳에 퍼져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선배 한 분은 강원도 동해안 기지에서 복무했는데, 한겨울에 고속정 타고 정찰 나가면 손발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바닷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보온장갑을 껴도 무의미했다고합니다.
기지 내에서는 레이더와 통신장비 교육도 받았는데, 당시엔 그런 기계 다루는 게 진짜 특기였다고 하더라고요. 선임들이 장비 하나하나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이게 우리가 살아남는 무기다”라며 직접 가르쳤답니다. 당시 고가장비 이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병영 내 문화는 지금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엄격 했엇답니다. 상명하복은 당연지사였고, 장교들이 지나가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밤마다 모의훈련이 자주 있었고, 실제 침투 상황처럼 긴장감을 유지했기 때문에 휴식은 그냥 단어일 뿐이었답니다.
2. 일상이 실전같은 해병대
해병대 출신인 제 이모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군대 중의 군대”였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제주 해안 쪽에서 복무하셨는데, 상륙 훈련을 할 때마다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게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무게가 꽤 나가는 장비를 메고 바다로 뛰어드는 그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하답니다.
유격, 야간 침투 훈련 같은 건 기본이었고, 심지어 폭우가 쏟아져도 훈련은 강행됐답니다. “우리야 실전 부대니까 당연하다”는 게 간부들의 말이었다고요. 무적해병 ,전천후해병 이라는 기치하에 무조건 강행을 했었답니다.
해병대 내에서 선임 문화는 타군에 비해 정말 강했다는데, 특히 ‘기수’ 개념이 절대적이었대요. 한 달 차이도 엄청난 벽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몸도 마음도 정말 강해야 했다고 합니다. 지금 보면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모부는 그 경험 덕분에 지금도 뭐든 참고 버티는 힘이 생겼다고 하세요.그러니 지금도 옛 전우들과 끈끈한 유대를 맺고 있겠지요
3.해안 부대 병영문화의 특징
해안 부대는 그 특성상 정말 ‘단절된 공간’이었다고 해요. 한 해병대 출신 블로거는 “우린 세상과 담 쌓고 살았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전화 한 통, 편지 한 장이 전부였던 시절이라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고요.
그리고 근무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해군 예비역은 "파도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날이면 이상하게 불안해졌다"며, 그 정도로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비가 쏟아지는 칠흑같은 밤이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수 없었답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늘 경계 상태였던 거죠.
휴식 시간엔 TV도 거의 못 봤고 편지도 자유롭게 쓰지못하고, 독서는 그냥 ‘책장 정리’ 수준이었다는 말도 들었어요. 주말이면 내무반에서 바닥 닦고, 체력 단련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외박이 유일한 낙”이었다던 어느 선배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4.1980년대 해안 방어부대 이야기 결론
1980년대 해안 부대에서의 군생활은 단순한 병역이 아니라 ‘국방 최전선에서의 삶’이었습니다. 해군과 해병대는 실전 같은 훈련과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고, 그들의 기억 속엔 단순한 군기가 아닌, 동료와 함께 버틴 시간의 의미가 깊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경험을 기억하고, 지금의 병영 문화와 비교해보는 건 우리 사회가 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좋은 통찰이 될 것입니다. 혹시 가족이나 지인 중 해안 부대 출신이 있다면, 조용히 물어보세요. 분명 잊지 못할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