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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군대모습

by 인생은 허리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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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주제 소개]

현시대 젊은이들은 조선이라 하면 엄청나게 오래전 나라로 느껴지겠지만 불과 백 년 조금 넘은 시대의 이야기이다. 조선 말기, 제국주의 열강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확대하던 1890년대는 이 나라땅 조선 군대의 마지막 모습이 드러난 시기였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구군제가 무너지고 신식 군대가 도입되기 시작했으나, 내부적인 혼란과 외세 개입으로 인해 군제 개혁은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마지막 군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며, 고유한 체계와 외래 군사 문화가 충돌했던 시기였다.


1. 구군제의 최후 – 조선 전통 군제의 붕괴

조선의 전통 군제는 오랜 시간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뉘어 운영되어 왔다. 중앙군으로는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이 있었으며, 지방 군은 각 도의 수군과 진영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세기말에 들어서며 이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유명무실해졌다. 청나라와 일본의 내정 간섭, 그리고 열강들의 무기 시연 등으로 조선은  창과 활만 가진 전통적인 군제만으로 국가를 지키는 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 같은 사건을 계기로 군제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기존의 구식 군대에 대한 불만과 무기력함이 표면화되었다. 당시 구식군은 조직이 낙후되어 있었고, 병사들의 훈련도 부족했으며, 무기 역시 조총이나 창, 활 등 구시대적인 장비에 의존하고 있었다. 더욱이 국고의 부족으로 병사들에 대한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사기가 떨어지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조선의 전통적인 구군제는 1890년대를 지나며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군사 조직은 해산되었고, 일부는 신식 군사 체제로 흡수되거나 재편되었다. 이는 단순한 조직 변화가 아닌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근대화의 일환이기도 했다.


2. 신식 군대의 등장 – 진위대와 별기군의 운명

조선은 근대 군사력의 도입을 위해 ‘별기군’이라는 신식 부대를 처음 도입했다. 이 부대는 1881년 구성되어 일본식 훈련법과 장비를 바탕으로 조직되었으며, 외국인 교관이 병사들을 교육하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하고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별기군은 구식 군과의 갈등, 특히 임오군란을 계기로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진위대가 새롭게 편성되며 조선은 신식 군제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진위대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편제와 훈련 방식을 채택했고, 병사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급여를 받았으며 외국 무기를 도입하여 무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재정 부족과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려웠다. 특히 군제의 변화가 지나치게 일본에 의존한 형태였기 때문에 자주적인 군사력이라 보기엔 한계가 분명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대한제국이 수립되며, 대한제국 육군으로 통합 재편되긴 했지만, 전체 병력 규모는 약 1만 명 내외로, 국방력이라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일본은 이후에도 조선의 군제 개편에 깊숙이 관여했고, 이는 나중에 군대 해산(1907년)으로 이어지는 전조가 되었다.


3. 군대 해산 전 최종 모습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은 조선 군대 군사력의 종말 즉 없어졌다고 의미했다. 이 해산은 한일 신협약 체결 이후 일본이 조선의 군대를 무력화하기 위해 강제로 시행한 조치였다. 당시 대한제국 군대는 진위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전국에 7개 연대와 훈련소를 포함한 약 1만여 명의 병력이 있었으나, 일본은 우리 군대가 일제에 저항할 가능성을 사전에 미리 차단하려 했다고 봐야 한다.

군대 해산 당시, 일부 병사들과 장교들은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전투를 벌였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박승환 장군의 자결과 정미의병의 봉기였다. 해산 이후 많은 병사들이 의병으로 전환되어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하게 되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민족군으로 계승되었다. 우리의 너무나 슬픈 과거다.

결국 조선의 마지막 군대는 단지 병력의 문제나 조직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 주권의 상징이었고, 그것이 일본이라는 외세에 의해 해산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비극성을 안고 있다. 당시 병사들의 충성과 군대 해산 과정에서의 저항은 지금까지도 조선 군사사에서 의미 깊게 다뤄지고 있다.


4. 결론: 조선말 군대, 변화 속 저항의 상징

조선 말기 군대는 전통에서 근대군대로의 전환을 꾀했지만, 내부의 준비 부족과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했다. 구군제의 해체, 신식 군대의 도입, 그리고 군대 해산까지의 여정은 조선이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자, 주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시도였다. 오늘날 이 시기의 군사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단지 전쟁사나 병제 개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사에 맞서려 했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