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누가 그랬다. 군대는 시대를 말해준다고
군필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냐"라는 말.한달만 빨라도 그런말한다.
나도 예전엔 그냥 꼰대식 농담인 줄 알았다.
근데 1970년대 군대 얘기를 제대로 듣고 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 시절 한국군은 한마디로 ‘버텨야 하는 곳’이었다.
복무기간은 33개월.거의 3년 지금보다 너무 긴 복무였다.
미군이 쓰다 버린 장비에, 맞지도 않는 군복. 훈련은 고되면서도 장비는 늘 부족했다.
겨울엔 난방이 안 돼서 담요 두 장에 온몸을 돌돌 감고 자야 했단다.
그 와중에 훈련 나가면 땅은 꽁꽁 얼어 있고, 구보는 10km가 기본.
휴가? 간부 눈치 잘 봐야 갈 수 있었고, 편지는 가끔 오고, 간혹 답장 오고.
그 시절 ‘전우애’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동료애였다.
반면 북한은 좀 다른 의미로 군대가 전부였다.
말 그대로 ‘국가 = 군대’.
남한은 군을 필요에 의해 운영했다면, 북한은 군으로 국민을 다뤘다.
그만큼 병사 한 명 한 명까지 철저하게 통제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 통제가 당연한 걸로 여겨졌다는 거다.
2.어떻게 살까..무조건 견디는 생활
1970년대 군생활을 들여다보면, 하루하루가 고비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군의 하루는 새벽 점호부터 시작해서 체력단련, 훈련, 정신교육, 야간근무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 기합, 얼차려, 삽질. 곡괭이질 .작업.작업이었다.
지금 군필자들이 얘기하는 ‘기수문화’도 이때 생겼다고 본다.
말 잘못 하면 얼차려, 눈 마주치면 복장 점검.
일단 선임이 부르면 무조건 “네” 부터 나와야 되는 시스템.
그리고 PX? 없었다. 말 그대로 없었다.
북한은?
군대라기보다 정치학교에 가까웠다.
사상학습이 훈련보다 더 중요했고,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은 책상 앞에서 수령님의 어록을 외우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물론 훈련도 빡빡했다.
군장 메고 산 넘고 강 건너는 건 기본.
근데 훈련이 끝나고 나서도 자유시간은 없었다.
다시 교육. 다시 보고. 다시 정신무장.
무서운 건, 감시가 일상이었다는 점.
한 부대원이 뭔가 말 실수라도 하면, 다 같이 불려가서 ‘사상 점검’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사람보다 체제가 먼저였던 거다. 너무힘든 김일성 체제
3.전쟁을 준비한 방식도 달랐다
남한은 당시 미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M16, 장갑차, 포병장비. 거의 다 미국에서 온 거.
물론 훈련은 그에 맞춰 이뤄졌지만, 항상 문제는 ‘수량’이었다.
있긴 있는데, 막상 실전이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건 누구도 장담 못 했다고 한다.
반면 북한은 아예 개념이 달랐다.
‘전쟁이 나면 3일 안에 서울 점령’
이게 실제로 세워졌던 전략이라는 거, 들으면 소름 돋는다.
그래서 훈련도 단기 속전속결 위주.
땅굴로 침투, 특수부대로 후방 타격, 산 속에서 며칠씩 버티며 움직이는 훈련.
기계화보단 병력 중심, 숫자 중심.
무서운 건, 그들이 그걸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거다.
4.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는 끔찍한 하루하루 였다.
지금은 군생활 얘기도 웃으며 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며 맥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다.군 추억담은 좋은 술안주 이기도 하다
근데 그 시절엔 안 그랬다. 진짜로.
살아남아야 했다.
실수하면 맞았고, 군기 빠지면 부대 전체가 고생했다.
북한은 실수하면 그냥 ‘보고’였다. 그리고 다시 사상 학습.
군필자라면 그 감정을 안다.
혼자 밤에 초소 서면서 느끼는 그 이상한 긴장감.귀신이라도 있나
내 뒤에 뭐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돌아보게 되는 그 느낌.
그게 그땐 더 심했을 거다.
그때는 진짜로 전쟁이 날 수도 있었으니까.
5.정리하자면
군대는 늘 힘들다.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1970년대는 그냥 힘든 게 아니라, **“국가 전체가 군대였다”**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였다.
남한은 자립과 생존을 위한 군대였고, 북한은 체제를 지키기 위한 군대였다.
둘 다 결국 병사 한 명 한 명의 하루로 드러났다.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훈련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드는가.
그게 군의 성격이고, 시대의 색깔이다.